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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이혼한 가수 편승엽, 두 번째 부인 故 길은정 사망원인의 진실, 베일을 벗다.
세 번 이혼한 가수 편승엽, 두 번째 부인 故 길은정 사망원인의 진실, 베일을 벗다.

 

길은정이 편승엽과 결혼한 후에 직장 암을 앓았다고 착각하는데, 사실 길은정의 암 투병이 먼저였습니다. 편승엽은 1964년 8월 14일에 본명인 편정범으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트로트 가수 출신이었지만, 1991년 서울 민들레라는 노래로 데뷔했지만, 무명 가수로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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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찬찬찬이라는 노래로 대중들의 호감을 얻었고, 이어서 당시 길은정과의 결혼으로 인해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게 됩니다. 당시 길은정이 암 투병 중이였기 때문에 대중들의 동정심이 컸고, 이 덕분에 편승엽과 길은정의 사랑은 대중들에게 순애보적인 인식으로 전해졌습니다. 참고로 편승엽과 길은정은 딸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길은정이 이미 많이 아프기 때문에, 결혼 당시 임신이나 출산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결혼한지 6~7개월 만에 편승엽과 길은정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 2월 결혼, 1997년 9월 이혼) 나중에 편승엽과 길은정의 이혼 사유가 좀 더 명확하게 밝혀졌습니다. 이후 2002년, 길은정은 인터넷을 통해 과거에 대해 폭로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길은정은 편승엽이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포장된 결혼"을 하려는 XXX 등이라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길은정의 기자회견에는 길은정 외 2명이 편승엽에 대해 폭로를 했습니다.) 결국 편승엽은 명예훼손 혐의로 길은정 등을 고소하게 되고, 재판부는 편승엽의 승소를 판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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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판부의 판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편승엽이 '순애보'의 주인공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회에서 매장당할 정도의 파렴치범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편승엽이 순애보의 주인공처럼 결혼을 한 다음에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져야 했지만, 그렇지 못한 데에 대하여 파렴치범으로 몰 수는 없다.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여지는 있지만) 결국 재판 결과, 길은정은 징역 7개월 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사실 당시 편승엽은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사람들의 비판이 심했죠. 그래서 '편승엽의 죄'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합니다. 다만, 편승엽 역시 길은정이 암으로 아팠던 것은 잘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길은정이 이미 암 수술을 받고, 또 투병을 하고 있었기에 몰랐다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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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으로 아픈 사람에게, 편승엽처럼 접근하여 결혼까지 한 후 6~7개월 만에 이혼을 하면, 길은정의 상처가 얼마나 심했을까요? 사람이 같은 잘못을 하더라도 상대에 따라서는 천차만별입니다.

상대의 잘못이 아무리 크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는 반면에,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거의 죽을 만큼 고통을 당하는 사람도 있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희망이 절망으로 변했던 길은정의 인생이 너무나 가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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